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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괴담으로

이건 내 꿈속에서 있던 일이야 - 4

 류해에게 미안한 마음에 더더욱 괴물을 없애기로 마음먹었어. 절대로 살려두지 말아야지. 그게 오랜 친구이자 나를 좋아하는 민은이라고 해도.

 

나는 다시 한번 계획을 꼼꼼히 훑어보고 방 문을 열고 부엌으로 향했어. 방에서 나가기 전에 창문이 제대로 잠겨있는지 한 번 확인을 하고 말이야.

 

 통화하고, 류해에게 사과하고, 계획을 세우기까지 10분은 걸렸을 텐데 부엌에는 떡만 불려 지고 있었어. 나는 몸에 기합을 넣고 굳어있는 다리를 평소처럼 보이기 위해 힘을 주고 민은의 바로 옆으로 갔어.

 

 "떡 뿔려놓은 거야? 근데 이거 다 먹을 수 있겠어?"

 

 스뎅 양푼이 안에는 1인분씩 포장되어 있는 떡이 5 봉지 정도 물에 담가져 있었어. 그리고 그 옆으로는 고추장, 어묵 등 떡볶이에 들어가는 기본 재료가 올려져 있었고.

 

 "조금 있다가 손님 올 것 같아서 많이 만들어 놓으려고."

 

 민은은 또 의미심장한 말을 하면서 웃었어. 저 웃음에 넘어가서는 안돼.

 

 "아 맞다 민은아"

 

 내가 이름으로 부르자 괴물은 좋아라 웃었어.

 

 아직은 총을 보여달라고 할 때가 아니야.

 

 "앞치마는 어디서 찾았어? 우리 엄마가 엄청 꽁꽁 숨겨둬서 나도 몰랐는데."

 

 연극부에서 키운 내 연기력이 이런 곳에서 쓰일 줄은 몰랐어. 정말 다행이야.

 

 "세번째 서랍에 들어가 있었어~ 하나 더 있던데 입을래?"

 

 부엌에 있는 서랍의 세 번째 칸에는 랩, 호일, 일회용 수저 등이 들어가 있었다. 뭐 때문에 세 번째 칸을 열어본 거지?

 

 "그런데 간단한 떡볶이 만드는 데 앞치마가 필요해? 별로 기름이 튀는 것도 아니고 양념이 잘 묻거나 하지도 않잖아"

 

 나는 떡이 담긴 양푼이를 옆으로 옮겨놓고 싱크데에서 손을 씻었어. 겉으로는 티가 안 났지만 옷 안으로는 식은땀이 엄청나게 나고 있었지.

 

 "그런가...? 그래도 오랜만에 하운이하고 요리하는데... 대단한 건 아니더라도 기분은 내보고 싶어서"

 

 나는 괴물이 민은이의 흉내를 낼 때마다 정말 미칠 것 같았어. 민은이하고 나는 중학생 때 처음으로 만났는데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친절하고 바보 같던 민은이 자꾸만 떠올라서 굳게 잡고 있던 마음이 흔들렸거든.

 

 "이, 입을게..."

 

 시선과 고개는 거품을 내고 있는 손에 꽂혀있었지만 안 봐도 민은이 활짝 웃고 있을 것 같았어. 민은은 내 뒤로 돌아가서 세 번째 서랍을 열고 곱게 접혀있는 앞치마를 꺼내 주었어. 나는 거품을 물에 씻어내고 수건에 물기를 닦은 뒤 앞치마를 메기 위해 손을 뻗었어. 그런데 눈앞의 앞치마는 나에게 넘어올 생각이 없었어.

 

 "내가... 해주면 안돼?"

 

 미친놈.

 

 옆에 있는 것도 토 나올 것 같은데 직접 닿는다고?

 

 나는 미간이 찌푸려지지 않도록 고개를 올려서 민은을 쳐다봤어. 민은은 속상한 토끼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미치겠어. 어떻게 해야 돼? 나는 눈앞의 이것을 류해를 죽인 괴물로 봐야 해 아니면 친구 민은으로 봐야 해?

 

 "정말... 안돼?"

 

 무섭고 토 나올 것 같았지만 겉모습은 민은의 모습이어서 쉽게 거절하기가 힘들었어. 토가 나와도 앞치마를 입고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걸음, 민은에게 다가갔어.

 

 "돼"

 

 그리고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날 죽일 수 있는 괴물에게로 머리를 들이밀었지. 그러자 괴물은 부드러운 손으로 조심히 앞치마를 메어주고 뒤의 끈까지 묶어줬어. 끝난 줄 알고 참고 있던 숨을 내쉴 때, 묶고 있는 머리카락에 소름 끼치는 감각이 느껴졌어. 중단발 머리카락을 묶고 있기까지 해서 풀고 있을 때보다 조금 짧았지만 그래도 정확하게 느껴졌어.

 

 도저히 인간의 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길고 섬뜩한 괴물의 손가락과 손톱을 말이야. 내쉬던 숨이 다시 헙 하고 들이마쉰 채로 멈추고, 눈 밑이 파르르 떨렸어. 내가 말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 섬뜩한 느낌이 끊기질 않을 것 같았어.

 

 "다 됐어?"

 

 "...응. 잘 어울린다."

 

 약 1분간 참았던 숨을 헉헉대면서 내쉬고 내려다본 앞치마는 내가 입고 있는 빨간색 후드티와 완전히 대조되는 남색의 무늬 없는 린넨 소재의 앞치마였어. 전혀 어울릴 수가 없는 조합이었지. 그런데도 민은은 잘 어울린다고 해. 계속. 분명 겉치레인 말이겠지만 그래도 민은의 얼굴, 표정, 행동으로 말하니까 정말 네가 류해를 죽인 게 맞냐고 울면서 묻고 싶었어.

 

 "그...래? 고마워."

 

 "지금 물 올릴까?"

 

 "어, 어..."

 

 나는 커다란 냄비를 꺼내고 정수를 받았어. 완전히 넋 놓고 싶었지만 옆에는 괴물이 있으니까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민은은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옆에서 어묵을 잘랐어. 내 후드티와 앞치마가 대조되듯, 나와 옆의 괴물도 완전히 대조되고 있었어. 내가 남색의 탈을 쓰고 남색을 맞춰주고 있는지, 괴물이 빨간 탈을 쓰고 나와 똑같아지고 싶은지 모르겠어.

 

 "하운아, 물 넘치고 있어"

 

 "어?"

 

 나는 황급히 물을 잠그고 살짝 버린 뒤에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려놓았어. 그리고 가스를 켜고 불은 중불로 맞춰놓았지. 이것만 하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어. 총보다 먼저, 소금을 뿌려보는 것.

 

 하지만 갑자기 소금을 꺼내고 하기에는 괴물의 눈치가 보였기에 양념을 만드는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소금을 꺼내기로 했지.

 

 "너 재료 손질 끝날 때까지 내가 양념 만들고 있을까?"

 

 민은은 어묵 이외에도 파, 양배추 등을 손질하고 있었어.

 

 "그래"

 

 나는 이미 꺼내져 있는 고추장과 고춧가루 외에도 여러 양념들을 넣어 떡볶이 양념장을 만들었어. 그리고 작은 숟가락으로 양념을 살짝 퍼서 민은의 입에 넣어주었어. 아직 소금 넣기 전의, 물을 왕창 넣어서 싱거운 양념장을.

 

 "어때? 조금 싱거운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다른 숟가락으로 나도 한 모금 정도 먹었어.

 

 "음... 조금 싱거운 거 같아. 소금 넣을까?"

 

 "어?"

 

 민은은 아무렇지도 않게 가스레인지 밑 작은 서랍장에서 소금을 꺼내 주었어. 소금은 통에 담겨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그렇게 믿고 소금통을 받았어.

 

 도깨비가 붉은색도 안 통하고 소금도 안 통하면... 생각만 해도 절망이었어. 민은이와 류해는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절망이었어.

 

 나는 소금통 뚜껑을 열고 양념장에 짠맛을 더했어.

 

 아. 녹은 소금은 소용없으려나?

 

 그리고 나는 실수인 척 소금통을 민은의 쪽으로 툭 쳐서 쏟았어. '어떡해! 미안해!'하는 연기와 함께.

 

 "아이구, 내가 치울게. 너한테는 안 튀었어?"

 

 민은은 키친 타올도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소금을 쓸어담고 쓰레기통에 버렸어. 정말 이제는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 쯤, 또 한번 주머니 속 전화가 울렸어.

 

 소금을 싱크대에서 닦던 민은은 '오늘 바쁜 일 있어? 괜히 왔나...'하고 주눅 들어했어. 나는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하고 대답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지.

 

 오늘 바쁜 일 있냐는 말에는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괜히 왔냐는 답에는 무조건 응이라고 대답할 거야.

 

 눈을 질끈 감고 전화를 받았어. 전화를 건 상대는 진영이었어.

 

 "여보세요? 너 괜찮아? 아까 엄청 진지하게 증거 찍는다는 말 뒤로 전혀 연락이 안 오길래..."

 

 "걱정해줘서 전화한 거야? 정말 고마워.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죽었을지도 몰라."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지.

 

 "아빠한테 말해봤더니, 쉬고 있는 친구 몇 명... 아마도 같은 경찰인 친구를 말하는 것 같아. 친구 두세 명은 데리고 가정 방문 가능하대."

 

 "정말? 정말 너무 고마워 진영아. 너 없더라면 어떻게 될지..."

 

 구세주야. 정말로.

 

 "너희 집 OOO동 OOO호 맞지?"

 

 "응. 지금 바로 가능해?"

 

 시계를 봤어. 오후 4시 45분. 44분보다 더 기분 나쁜 숫자에 혀를 찼지.

 

 "가능한 빨리 말해볼게."

 

 "정말 고마워. 그리고 아까는 화내서 미안해 진영아."

 

 "아니야 나야말로 도와달라고 해서 고마워."

 

 잠깐의 훈훈했던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민은에게서 들은 말 한마디가 퍼뜩 뇌리를 스쳐갔어.

 

 '조금 있다가 손님 올 것 같아서 많이 만들어 놓으려고.'

 

 설마, 손님이...

 

 그럴 일은 없다고 내 두 뺨을 때리고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갔어. 밖에는 이미 떡볶이 향이 풍겨지고 있었어.

 

 에어컨 온도도 낮아져 있었지만 후드티를 입고 식은땀까지 흘러서 그냥 놔두기로 했어.

 

 "벌써 완성되어가고 있는 거야? 엄청 맛있는 냄새난다!"

 

 아까하고 똑같은 얼굴과 목소리로 톤으로 부엌으로 갔지만 민은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어. 대신 올려다본 민은의 표정에서 왠지 조금 실망했다는 느낌이 들었지.

 

 "'괴물이 사람을 어떻게 죽였는지 자세하게 알려줘야 거짓말이 아니란 걸 믿겠어?', '정말 너무 고마워 진영아. 너 없더라면 어떻게 될지.'라니... 나라도 조금은 상처 받아 하운아."

 

 미친.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들어?"

 

 나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오고야 말았어. 얘는, 민은이는 이제 인간이 아니야. 괴물이야.

 

 "내가 네 옆에서 몇 년 동안 일본어를 들어왔을 것 같아? 아직 하운이 너보다는 실력이 낮지만 제대로 능력 시험도 보고 자격증도 있어... 나에게 일본어를 알려준 건 너잖아, 하운아"

 

 미쳤구나. 내가 제일 미친 거였어. 못 알아듣기는 뭘 못 알아들어. 제정신이 아니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