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턱 막혀오고 정말 끝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 도망치고 싶어도 두 다리가 돌처럼 굳어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어.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며 실행한 계획이 늪이었던 거야.
"...무서워?"
욕이라도 하려고 입을 열였지만 허공에 대고 뻐끔거리기만 하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
"괜찮아. 아직 하운이 너에게까지는 해를 입히지 않을 거야. 손님이 정말 와버린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뒷말을 흐리는 사소한 점까지도 정말 무서웠어. 민은이와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데, 끝부분은 전부 민은이의 탈을 쓴 괴물로밖에 보이지 않아. 어떻게든 창문을 열어서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언제나 열려있던 창문의 잠금장치가 굳게 잠겨져 있었어. 세상에, 괴물이 잠가놓은 거야.
겁에 질린 나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내 두 눈을 바라보는 괴물에게서 고개를 돌렸어. 그리고 작은방 2로 어떻게 해서든 숨으려고 했어.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면서 다리가 깃털처럼 가벼워졌거든.
"아..."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라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작은방을 향해 뛰었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지.
이때였어, 다리에 전기가 흘러들어오는 듯한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면서 무언가가 내 오른쪽 종아리를 문 거야. 느낌으로만 말했을 때는 고양이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무언가가 있는 힘껏 물었다는 느낌이었어. 순간, 오른쪽 다리의 힘이 빠지면서 균형을 잃고 작은방 2와 거실 화장실 사이에 있는 큰 서랍장에 이마를 부딪히고 말았어.
사진에는 깜빡하고 그리지 못했지만 큰 서랍장에는 약이나 운동기구, 아직 쓰지 않은 세면도구 등이 들어가 있어서 엄청 무거워. 거의 냉장고만해.
그런데 그 무거운 서랍장의 모서리에 이마를 박아버린 거야. 오른쪽 종아리는 마비되고, 이마는 찢겨서 피가 철철 흐르고. 정말 죽는구나 싶었지.
나는 입으로 흘러내려오는 피를 침하고 같이 바닥에 뱉으면서 괴물을 노려봤어. 괴물은 아까 본 권총을 들고 서있었어. 총에는 게임에서 자주 보는 소음기도, 발사 후의 연기도 나지 않고 있었어. 그리고 하나 더, 장난감 총과 진짜 총을 구별하기 위해 bb탄 총에만 만들어놓은 주황색 부분이 없었어.
괴물이 들고 있는 저 총과 내가 어린이 날 선물 받은 총의 모양이 정말 똑같았기에 처음부터 주황색 부분이 달려서 나오는 같은 기종의 총인데, 괴물이 들고 있는 총에만 그게 달려있지 않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괴물은 민은의 얼굴로 울먹거리는 표정을 연출하면서 총을 쥔 손을 달달 떨었어.
나는 피가 속눈썹에서 글썽 거리는 걸 손등으로 닦아내면서 늦게나마 오른쪽 종아리를 쳐다봤어. 오른쪽 종아리에는 마작패가 살을 파고 들어서 이쪽에서도 피가 나오고 있었어. 마작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앞면에는 한자가 적혀있었고 뒷면은 그냥 초록색이었어.
나는 이 상황에서, 아파 죽겠는 상황에서도 다리에 꽂혀있는 그 마작패를 오른손으로 쥐고 숨을 참으면서 단번에 빼냈어. 비명도 안 나올 정도로 아팠어.
마작패에는 필 발(發)자가 적혀있었어. 하지만 내가 놀란 건 마작패에 한자가 적혀있다는 게 아니었어. 마작패의 밑면이 집의 지붕모양처럼 뾰족한 세모로 깎여있고, 거기에는 바늘이나 커터칼 심처럼 보이는 게 거미 다리처럼 여러 개 달려서 안쪽으로 굽어져 있었어.
오 이런 X발. 안쪽으로 굽어져 있는 바늘 사이에 찢긴 내 살점이 새빨갛게 물들여져서 그 안에 들어가 있었어. 욕이 나왔지만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어. 살점이 거기 들어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 종아리의 통증이 너무 심각해졌거든.
뭐가 나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거야. 미친 새끼.
"미안해, 하운아, 미안해... 괜찮아? 아파, 아프겠다. 미안해, 미안해."
괴물 놈은 불과 가스를 끄고 총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뒤 나에게 달려와서 상처에는 손도 못 대고 어떡해, 미안해를 반복하면서 울었어. 지금 울어야 할 게 누군데.
"꺼져"
거친 숨에 목소리를 섞어서 드디어 괴물 놈에게 욕을 했어. 괴물 놈은 내가 머리를 박은 서랍장에서 거즈나 붕대, 연고, 소독약 등을 품에 안고 내 앞에 무릎 꿇고 앉았어. 내가 한 욕은 들은 건지 아까보다 더 울면서 말이야.
"그러게, 왜 나한테서 도, ... 망 가려고 해. 난 단 둘이 있고 싶어서 류해까지, 없앴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괴물의 말에 난 어떻게 해서든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게 느껴졌어. 그리고 눈을 가리는 피를 계속 닦고만 있던 손으로 내 뒤에 세워져 있는 먼지 청소용 막대기를 손에 힘줄이 올라올 정도로 쥐었어. 그리고 내 다리에 마구잡이로 소독약을 들이붓고 있는 괴물 놈에게 힘껏 내리쳤어.
"...하운아"
괴물 놈은 치료를 하고 있는 오른손으로는 그대로 치료를 하고, 거들기만 하던 왼손으로 막대기가 날아온 오른쪽을 막았어. 그리고 막대기의 끝을 잡았어.
운동신경 하나도 없는 민은이가. 정말 괴물이란 게 다시 한번 느껴지는 순간이었지.
"나는 아직 너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싶지 않아. 주도권을 건 놀이는 손님맞이하고 하자. 알겠지?"
주도권이고 나발이고. 괴물을 죽이느냐 내가 죽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괴물 놈은 태평하게 말했어. 나는 내 걱정에도 벅찬 상황에서 괴물 놈이 말하는 '손님맞이'가 걱정되기 시작했어. 손님맞이가 나에게 한 것과 똑같은 거라면 진영이의 아버지이자 경찰인 사람은 류해처럼 정말 죽을 수도 있단 말이야.
나는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어서 괴물 놈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어. 그러자 괴물 놈이 말도 안 되는 힘으로 핸드폰을 잡고 있는 내 손목을 쥐어잡았어.
"아파, 놔."
나의 겁대가리는 이성의 끈이 끊기면서 같이 사라졌어.
"누구에게 전화하려고?"
"네가 말한 손님들 오지 말라고 전화할 거야. 놔. 이거 안 놓으면 너 정말 싫어할 거야."
내 마지막 말에 방금까지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던 괴물 놈이 또다시 울먹거리면서 고개를 푹 숙였어. 그리고 손목을 잡고 있던 지 손의 힘도 풀었어. 나는 바로 단축키를 눌러서 진영이에게 전화를 걸었어.
"여보세요"
"야 너희 아버지 오시면 안 돼. 위험해."
"어...? 아빠 지금 아파트 앞이라...고..."
"안돼 절대 안 돼. 당장 들어오지 말라고 전화 해. 정말 들어오면 죽어. 나, 너희 아버지까지 나 때문에 죽게 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이 괴물에게 사람의 목숨을 주고 싶지 않아."
나는 일부러 괴물이란 단어에 억양을 넣으면서 고개를 들지 않고 치료하던 손도 멈춘 괴물을 노려봤어. 내 말을 끝으로 진영은 전화를 끊었어. 통화하는 내내 내가 앓는 소리와 함께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서 헐떡대면서 얘기한 게 자기가 듣기에도 심각해 보였나 봐.
"손님이 오지 않으면, 뭐 하고 놀까... 하운아"
"내 이름 부르지 마. 넌 민은이 아니야."
솔직히 이 뒤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어. 도깨비, 괴물은 확실한데 아무것도 통하지가 않잖아. 정말 절망적이었어. 그런데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어. 동시에 핸드폰이 울렸어.
초인종 소리가 두 귀 가득히 맹맹해질 정도로 흘러 들어오고 초인종 소리에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가 합쳐졌어. 그리고 내 시선은 뚜둑 소리가 날 정도로 천천히, 괴물 놈에게로 향했어.
괴물 놈은 어느새 고개를 들고 시선을 현관 쪽으로 고정한 뒤 입꼬리가 뒤에서 보는 나한테 보일 정도로 귀까지 찢고 웃고 있었어. 나는 나 때문에 또 사람이 죽는다는 생각에 고개를 내저으면서 괴물 놈의 팔을 잡았어.
"안돼... 안돼."
내 행동에 고개를 돌린 괴물 놈은 주변에 꽃이 떠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하게 웃고 있었어.
"먼저, 잡아줬네. 고마워 하운아"
괴물 놈은 그 말을 하면서 내 손을 뿌리치지 않고 천천히 일어나더니 단지 내가 잡고 있는 팔에 힘을 넣어서 나를 들어 올렸어. 익숙하지 않은 자세일뿐더러 괴물 놈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게 구역질이 났어.
괴물 놈은 나를 안아 들고 내 방으로 갔어. 가는 동안에 그 기분 나쁜 입술로 볼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면서 말이야. 나를 내 침대에 눕힌 괴물 놈은 앞치마와 상의를 전부 벗고 내 옷장에서 자기에게 맞을만한 오버사이즈 옷을 골라 입었어. 토마토색, 즉 어두운 빨간색의 맨투맨에 노란색 영어가 써져 있는 옷이었어.
나는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서랍 1과 서랍 2를 잡고 일어나, 벽에 몸을 기댔어.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던 괴물은 문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침대로 올라와 내 오른쪽 종아리를 손으로 받치고 상처 부위에 입을 맞췄어. 그러자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지.
"이마의 상처도 이렇게 해주고 싶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금방 돌아올게 하운아"
나는 그렇게 방에 류해의 시체와 함께 남겨지게 되었어. 계속해서 울려대는 핸드폰에는 진영에게서 문자가 오고 있었어.
'하운아'
'야'
'제발'
'전화 좀 받아줘'
'하운아'
'정하운'
문자와 함께 계속해서 울려대는 핸드폰에 나는 '미안해' 한 마디를 적어 보내고 핸드폰의 전원을 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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