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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괴담으로

이건 내 꿈속에서 있던 일이야 - 6

 나는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어. 그래서 왼쪽 발로 침대를 디디면서 문 가까이로 몸을 옮기고 문에 바싹 귀를 댔어. 시끄럽게 울리던 초인종 소리가 끊기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어. 그리고 이어서 괴물 놈과는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여기가 우리 진영이 친구 하운이네 집이 맞나?"

 

 그리고 괴물의 대답도 들려왔어.

 

 "진영이요...? 아! 하운이 친구구나. 맞아요. 그런데 하운이는 지금 음료수 사러 나갔는데... 혹시 누구신지 여쭈어도 괜찮으실까요?"

 

 미친놈 연극을 하네 연극을 해.

 

 "나는 진영이 아빠 되는 사람인데, 요새 하운이 주변에서 위험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서 한번 들러봤다. 학생은?"

 

 나는 속으로 제발 진영이의 아버지와 친구분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어.

 

 "저는 하운이의 중학생 때부터 친구예요. 오늘은 그냥 놀러 왔고요. 진영이하고는 하운이을 통해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정말 닮으셨네요~"

 

 "하하 우리 아들이 날 아주 쏙 빼닮았지."

 

 대화가 끝난 듯 했어. 그리고 나는 제발 지금 돌아가시기를 바랐어.

 

 "그... 현관에만 계시기엔 좁아 보이시는데... 들어오세요, 하운이에게 전화해볼게요."

 

 안돼!

 

 현관에서 신발 벗는 소리와 함께 식탁 의자에 사람이 앉는 소리가 들려왔어. 그것도 한 명이 아니야...

 

 "...여보세요? 응 하운아."

 

 그리고 내 귀 바로 가까이에서 괴물의 목소리가 들렸어. 나하고? 통화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핸드폰 전원을 꺼놨으니까. 하지만 괴물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가까이에서 말했어.

 

 "요새 잠에 잘 못 들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어? 응, 응. 그래서 지금 진영이 아버님과 다른 분들이 몇 분 오셨는데... 응, 알겠어. 빨리 와"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어. '요새 잠에 잘 못 들던 것'. 이건 꿈 밖에서의 일이었거든. 민운과 류해가 나오는 꿈을 4번째 꾸고 있다고는 해도 주에 한번 정도였고, 한번 그 꿈을 꾼 뒤로는 숙제에 과제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잠에 잘 들지 못했어.

 

 이젠 저 괴물에게서 나오는 모든 말이 우연이 아니란 게 실감이 났어.

 

 "하운이 금방 오겠다고 하네요."

 

 "그래? 그러면 집에 위험요소는 없는지 둘러봐야겠네."

 

 그리고 다시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어. 양말 신은 발로 바닥을 밟는 소리도 함께. 발소리가 너무 많이 들려서 누가 진영이네 아버지이신지, 어디로 가고 계신지 알 수가 없었어.

 

 "학생, 이 방은?"

 

 희미했지만 정확히 들려왔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은 내가 아까까지 피 흘리며 누워있던 작은 방 2의 앞이었어.

 

 "문이 자주 걸린다고 하운이가 그랬어요. 그럴 땐... 됐어요"

 

 아니.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고, 그 방의 문은 걸리지 않아.

 

 문이 열리고 닫히는 끼익 소리가 여러 번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어. 발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거야. 나는 당장이라고 나가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물씬 들었어. 그래서 내가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줄만한 물건을 주변에게 찾아봤지.

 

 서랍 1과 2를 전부 찾아보고, 쓸만한 것들은 침대 위에 모아놓았어.

 

 작은 손수건과 압박붕대, 테이프, 그리고 흰색 파우더와 bb탄 총, 총알까지. 그 외에도 체육대회 때 반티에 맞춰서 산 수갑을 발견했는데 쓸 수 있을지는 몰라서 일단 주머니에 넣어놓았어.

 

 이걸 찾는 동안에도 발소리 하나가 더 줄었어. 마음이 급해졌지.

 

 나는 작은 손수건을 반으로 잘라서 하나는 종아리 상처에 대고 압박 붕대로 둘둘 말았고, 나머지 하나는 이마에 대고 테이프로 붙였어. 흰색 파우더는 던지자마자 시야를 가릴 수 있도록 종이컵에 담았고, bb탄 총에는 총알을 가득히 채웠어. 그리고 같은 색이어서 티도 안 나던 후드티를 벗고 움직이기가 편한 학교 체육복 상의로 갈아입었어.

 

 나는 흰색 파우더를 뿌리기 전에 상황 판단을 우선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벌컥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어.

 

 미친.

 

 거실 한가운데, 그것도 류해가 죽은 그 자리에서 아까의 류해의 모습과 아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어. 누구인지 모를, 가벼운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공중에 들려서 괴물의 갈라진 혀에 눈알을 적출당하고 있었어. 나는 순간 괴물이고 나발이고 나 때문에 또 사람이 죽었다는 분노에 bb탄 총을 꺼내서 바로 괴물에게 겨눴어.

 

 bb탄 총은 사람을 향해서 쏘면 안 돼. 하지만 이미 저건 사람도 아니고 민은도 아니야.

 

 정말 주저 없이 쏘아댔어. 내 시야가 가려지면 안 되니까 흰색 파우더는 뿌리지 않았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 내가 왜 오랜 친구인 민은을 가차 없이 쏴야 하는지, 괴물은 왜 사람을 죽이는지. 전부 내가 잘못한 것만 같았고 솔직히 내가 죽으면 더 이상의 사상자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생각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고 뒤죽박죽 섞이기 시작했어. 꿈인데도 말이야.

 

 "정하운"

 

 총을 쥐고 있는 두 손에 낯선 감촉이 느껴지면서 민은의 목소리가 들렸어. 이젠 정말 죽을 준비를 해야겠다고, 류해와 경찰분들을 죽였으니까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괴물은 나에게서 총만 빼앗고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은 내 손에 자신의 목을 가져다 댔어.

 

 자칫 손에 힘을 줬다가는 그대로 질식시킬 수 있는 자세가 되어버린 거야.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서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어.

 

 "그렇게 죽이고 싶으면 죽여도 괜찮아. 하운이 너니까"

 

 이제 알 것 같아. 나도 미쳤고 얘도 미쳤어. 우리가 왜 이렇게 된 지 모르겠어.

 

 손에 힘을 쥐고 숨통을 끊으면 되는 일인데, 당한 만큼 돌려주면 편안해지는 일인데!

 

 과연 편안해질까?

 

 나 때문에 친구가 죽고 경찰이 죽었는데, 여기서 아무리 괴물이더라도 그전에 친구인 민은을 죽이고 살아남는다고 해도 내가 편안하게 전처럼 살 수 있을까?

 

 나는 과호흡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로 다리에 힘이 풀려서 결국 주저앉고 말았어. 과호흡에 지금까지 꾹꾹 참았던 눈물까지 터졌어. 하지만 그 와중에도 무릎을 꿇고 내 손을 놔주지 않는 괴물을 노려봤어. 증오가 가득한 눈빛으로.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며.

 

 "그럴 줄 알았어, 하운아.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해"

 

 가장 보기 싫은, 행복해 죽겠다는 웃음의 괴물에 이딴 거 하나 죽이지 못하는 내가 너무 무력하게 느껴졌어. 정말 비참하고 무력해서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죽고 싶어 졌어. 내가 죽으면 적어도 이 괴물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같이 있자"

 

 정말 정신도 무력해지고 몸도 무력해져서 손가락 까딱하지 못할 정도가 되자 괴물은 내 손을 놓아주고 아까처럼 기분 나쁜 자세로 나를 안아 들었어. 나는 눈물만 쏟았고, 탈수가 올 지경까지 돼서 그냥 죽여달라고 말했어.

 

 "야"

 

 "응?"

 

 "그냥 죽여"

 

 "응?"

 

 애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괴물은 엄청 상처 받은 표정을 짓고 미간을 찌푸렸어. 나는 손에는 힘을 넣지 않고 팔만 움직여서 분명 있을 마작패 총알의 총을 찾았어. 맨투맨 안에까지 팔을 넣어서 더듬어봤지만 신은 정말 날 버린 건지 아무 데도 없었어.

 

 나는 꿈이니까. 마지막 희망인 꿈이니까, 꿈에서 깨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꿈에서 깨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괴물한테 어울려 주기로 했어. 인간의 마지막 미친 짓이지.

 

 괴물은 나를 데리고 안방으로 데리고 갔어. 그리고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눕히고 솜이불을 덮어주었어. 여기서 끝난 줄 알았는데, 이후로도 물이 담긴 그릇과 손수건을 가져와서 내 눈물과 떡진 피를 닦고, 머리카락을 빗어서 정리해주기까지 했어.

 

 "야"

 

 "이름으로 불러 줘 하운아"

 

 어차피 이번 꿈에서 널 보는 것도 마지막일 테니 그러기로 했어.

 

 "임민은. 아무 얘기나 해봐. 꿈에서 좀 깨게."

 

 괴물은 이불을 들추고 내 오른쪽 종아리의 피를 닦았어.

 

 "처음에 한 말, 기억나? 인간을 100명 죽이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해준 거."

 

 그거 때문에 이 사달이 났지. 해탈했어.

 

 "사실은 조금 달라. 인간을 100명 죽이면 인간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을 100번 죽여야 도깨비가 될 수 있는 거야."

 

 "그랬냐"

 

 어차피 내가 하는 이야기는 전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 같은 것들이니까.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

 

 "똑같은 인간을 100번 아프게 해도 도깨비가 될 수 있어. 우리는 그 인간을 숙주라고 해"

 

 우리는?

 

 "그리고 우리는 숙주를 사랑해."

 

 우리?

 

 "숙주를 사랑하고 사랑해서 나만의 숙주가 될 수 있도록, 다른 것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지켜야 해."

 

 아. 꿈에서 빨리 안깨나.

 

 "나의 숙주는 하운아 너야. 사랑해."

 

 "그래? 그럼 네가 도깨비가 되지 못하도록 혼자서 죽어야지. 죽어라 괴물 놈아."

 

 나는 이불속에 조신히 있던 손을 이불 밖으로 빼내서 괴물을 향해서 가운데 손가락을 날렸어.

 

 그리고 길고 지옥 같던 악몽에서 깨어나게 되었어. 드디어.